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은 누구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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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작성일17-05-10 13:03 조회1,717회 댓글0건본문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은 누구인가?<1>
“돌아보면 운명 같은 것이 지금의 자리로 나를 이끌어 온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펴낸 자전 에세이 ‘문재인의 운명’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운명처럼 이끌려 정계에 입문했던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패배를 딛고 이번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1953년 1월 24일 경남 거제에서 실향민인 아버지 문용형 씨(작고)와 어머니 강한옥 씨(90)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난 문 대통령. 그의 ‘운명’엔 다섯 개의 변곡점이 있었다.
사법시험 합격, 그리고 노무현
문 대통령은 1971년 부산 경남고를 졸업한 후 재수 끝에 경희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한 문 대통령은 판사를 희망했지만 유신반대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이 좌절됐다. 이후 문 대통령은 사시 동기인 박정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소개로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던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나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되면 그걸 계기로, 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변호사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가 만들어졌다. 여섯 살 차이지만 서로 말을 놓지 않았던 두 사람은 14년의 차이를 두고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청와대 ‘왕수석’
2003년 1월 당선자 신분이던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던 문 대통령을 서울로 불러 “민정수석을 맡아 달라”고 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차례로 맡으며 노 전 대통령 옆을 지켰다. 당시 문 대통령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은 청와대에서 유명했다. 한 친노(친노무현) 인사는 “시민사회수석실은 성격상 도처에서 보고서가 엄청나게 올라온다. 아침 회의에 가 보면 문 대통령은 보고서마다 밑줄을 다 쳐놨다. 밤새 읽은 것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다”고 전했다. 이런 성격은 정계 입문 뒤에도 바뀌지 않았다. 2015년 6월 의원 워크숍 당시 문 대통령과 한 방을 썼던 한 의원은 “문 대통령이 회의 후 자정 넘어 들어오더니 새벽 2시까지 보고서를 읽더라. 새벽 6시쯤 깨보니 또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정계 입문
“빨리 와주셔야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님이 산책 나갔다가 산에서 떨어지셨습니다.” 2009년 5월 문 대통령은 김경수 전 대통령연설기획비서관(현 국회의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인생의 경로가 또 소용돌이친 시점이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상주 역할을 하며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치렀다. 이후 친노 진영은 다시 결집했고, 그 중심에 문 대통령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4월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그해 6월 “암울한 시대가 나를 정치로 불러냈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3.53%포인트 차로 패배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패배 뒤 펴낸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저와 민주당은 많이 부족했다. 준비도 충분히 돼 있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새정치연합 분당 그리고 4·13총선
대권 재도전의 첫 단계는 당 대표 출마였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2·8 전당대회에서 그는 현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와 혈투를 벌였다. 이후 친문(친문재인)과 비문(비문재인) 진영 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고, 결국 2015년 12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비롯한 일부 비문 의원들은 탈당했다. 대선 패배 이후 두 번째 정치적 위기였다. 이후 문 대통령은 김종인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고, 민주당은 4·13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선전했다.
하지만 김 전 대표도 이번 대선을 앞두고 당을 떠났고 “함께했던 모든 사람이 당을 떠났다”는 ‘뺄셈의 정치’란 꼬리표는 문 대통령을 내내 따라다녔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혁신 반대 세력과 함께할 수 없었다”는 원칙론을 내세웠다. 이처럼 문 대통령은 일각에서 “지나칠 정도로 답답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자신만의 원칙에 충실하다. 2015년 3월 한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문 대통령의 차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조문을 위해 검은색 넥타이를 하시라’는 참모의 권유에 문 대통령은 “고인을 잘 알지 못하는데 (가식적으로) 검은색 넥타이를 하는 것은 오히려 거짓 예의”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선 과정에서도 “유권자들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며 정장 차림을 고수했다.
두 번째 대선 도전
지난해 6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뒤 문 대통령은 본격적인 대선 준비에 착수했다. 히말라야 트레킹 당시 문 대통령은 “왜 정치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30분간 말없이 걷던 문 대통령은 “주류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측 핵심 인사는 “이른바 ‘SKY’ 출신도 아니고,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오래 활동한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공정한 기득권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염원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적폐 청산’으로 이어졌다. 이번 대선을 준비하며 “2012년과 완전히 다르게 캠프를 꾸리겠다”고 천명한 문 대통령은 임종석 전 의원, 송영길 의원 등 그간 거리를 둬 왔던 인사들을 설득해 캠프에 합류시켰다. 집권 의지도 강해졌다.
경선 전 문 대통령과 독대했던 한 비문 의원은 “참모들이 ‘30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다’고 했는데 정작 문 대통령은 앉자마자 ‘막걸리라도 한잔하자’고 하더라. 2시간 동안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 캠프 합류를 요청한 이유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데 정말 사람이 달라졌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탄핵 정국이 펼쳐지면서 정치상황이 조기 대선 구도로 급변했다. 한 친문 의원은 “당초 1년 가까운 장기 레이스를 염두에 두고 준비에 나섰지만 선거가 앞당겨지면서 유리한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뒤늦게 뛰어든 경쟁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준비된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결국 문 대통령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2위 후보군이 계속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여론조사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고 최종 승자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 숨은 공신은? 호남특보 역할 톡톡히 한 부인, 김정숙 여사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 부인인 영부인의 활동도 주목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혼이어서 지난 정부에서는 대통령 배우자의 역할이 없었던 반면 대부분 정부에서는 대통령 부인이 정상적으로 또 대외적으로 대통령을 보조하는 활동을 해왔다.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63)씨는 1954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숙명여중·고를 졸업한 뒤 1974년 문 대통령과 같은 대학인 경희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서울시립합창단에서 활동했다. 문 대통령과는 1981년 7년간 연애 끝에 결혼했다. 김여사는 문 대통령을 지금도 '재인씨'라고 부른다. 김여사는 "나를 자유롭게 해줄 것 같아서 재인씨와 결혼했다"고 했다.
연애 시절 문 대통령을 그렇게 불러왔고, 공식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2012년 대선 때는 캠프 측에서 '후보'라고 지칭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격식 차리기보다 익숙하고 편안한 '재인씨'라는 호칭을 굳이 바꾸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고 한다. 영부인은 지난해 추석부터 최근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은 호남을 방문해 문 대통령 지지를 호소해 문 대통령의 '호남 특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는 문 대통령과 동선을 따로 잡고 전국 유세를 해왔다. 남편의 선거 활동 외에도 그간 사회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영부인은 '대통령 부인'으로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1978년 작고한 문 대통령의 아버지 문용형씨는 1920년 함경남도 흥남 태생으로 함흥농고를 졸업한 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흥남시청 농업계장·과장 등을 지냈다.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어머니 강한옥(90)씨와 문 대통령의 누나 재월(68)씨를 데리고 월남(越南)했다. 거제 피란민촌(村)에서 문 대통령과 여동생 재성(62)·재실(55)씨, 남동생 재익(58)씨를 낳았다. 모친은 미혼인 재실씨와 부산에 살고 있고, 동생 재익씨는 원양어선 선장으로 주로 외국에 체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근무할 때 동생 재익씨가 회사 배려로 지상 근무지로 발령이 났지만, 문 대통령은 재익씨에게 전화해 "회사가 알아서 했다고 해도 그 회사에 도움 줄 일 없으니 다시 배를 타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04년 7월 모친과 함께 함경남도 함주에 사는 막내 이모와 이산가족 상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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