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심각, 정상사회 아니다<2>
페이지 정보
권병찬 작성일15-08-20 05:56 조회1,463회 댓글0건본문
청년실업 심각, 정상사회 아니다<2>
일상 속으로 들어온 벌레들
차별의 의미로 쓰였던 벌레의 용법은 점차 다양한 형태로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논란이 되는 보수 사이트 일간베스트 이용자들에 대한 혐오의 표시로 벌레를 의미하는 충(蟲)을 붙여 ‘일베충’으로 부른데 이어, 다소 과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도 벌레라며 거부감 없이 부르는 것이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일부 커뮤니티 사이에서 비난과 조롱의 의미였던 단어들이 일상 생활의 영역으로 내려오면서 혐오가 옅어진 은어로 문제의식 없이 널리 통용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맘충’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해 논란이 됐다.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엄마들을 영어단어인 맘(Mom)에 벌레 충 자를 붙여 폄하하는 것으로, 어머니를 벌레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큰 반발을 불렀다. 주부인 김성연(33)씨는 “물론 자기 자식만 알고 남들을 신경 쓰지 않는 엄마들에게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이런 표현들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엄마를 비롯해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을 약자가 아닌 진상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전했다.
맘충 뿐 아니라 설명충(지나치게 길게 설명하는 사람) 진지충(모든 사안에 대해 진지한 사람) 페북충(모든 일상을 일일이 SNS에 게시물로 올리는 사람) 등 큰 잘못이 아니더라도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벌레취급을 당한다. 타인뿐 아니라 스스로를 토익충, 출근충이라 부르는 자조적인 용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토익공부나 출근처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의에 의해 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무력한 벌레에 빗댄 표현이다.
자조적인 공격성 드러내는 청년들
청년들은 왜 하필 벌레가 됐을까? 전문가들은 ‘불안감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실험용 쥐들을 상자에 몰아넣고 음식을 주지 않는 스트레스 상황을 만들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지금 한국이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헬조선’(Hellㆍ지옥+조선), 즉 한국사회가 지옥처럼 살기 어렵다는 신조어가 공감을 얻을 정도로 위기에 몰린 청년들이 자조적인 공격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교양 있고 양식있는 집단으로 자부하는 의사와 변호사 집단 내에서의 차별은 밥그릇 싸움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결국 기저에는 자신들의 독점적인 지위가 약화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며 “로스쿨이나 의전원의 계층 차별적 구조에 대한 지적은 기득권 지키기의 포장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 집단과 비슷한 종류의 차별이 나타난 곳이 서울대학교라는 점도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의 일부 이용자들은 농어촌 전형이 포함되는 기회균형선발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을 ‘기균충’이라 부른다. 지역균형선발을 비하한 ‘지균충’이란 말도 나왔다.
문제는 청년들의 공격이 사회적 약자, 즉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만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표현도 있듯이, ‘충’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 대한 비하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극심한 취업난과 높은 자살률 등 개인이 차지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줄어든 상황에서 사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주변인들, 특히 소수자에 대한 배려나 인권의식의 향상으로 기존보다 나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게 된 것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이런 단어들은 짧으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벌레뿐 아니라 더욱 강한 표현이 나올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과거 쓸모 없는 사람을 의미하는‘폐인’이 지금의 ‘벌레 충’과 비슷한 용법으로 쓰였듯이 단어가 주는 감각이 무뎌지면 이보다 더 자극적인 단어를 찾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미 벌레라는 단어 역시 무분별하게 일상 속에서 쓰이고 있는 만큼 이후 이보다 더 차별적인 혐오표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윤인진 교수는“널리, 또 가볍게 쓰이는 표현이라고 해서 그 안에 담긴 혐오와 차별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며 “규제나 제도개선을 통해서라도 관용을 상실한 한국사회에 제동을 걸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회적으로 몰지각한 사회에 왜 인문학이 필요없을까? 인문학을 죽이는 일은 사회의 정신을 죽이는 일이다. 돈과 결탁한 우리사회의 최고 지성집단인 의사, 법률가 집단에서 시작된 이 “충(蟲)”이라는 단어가 사라져야 건전하고 살만한 세상 아닌가? 우리 지성인들은 지성인이 아니라 그냥 자신들도 “충(蟲)”들이 되어 버렸다. 사회의 품격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지는 대목이다.
사회문제는 정신적으로 바로 잡아 나가고 이어 실제적으로 해소되어야 진정 사라진다. 현대의 선진정치는 과연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 국회선진화법으로 시스템을 마비시킬 것이란 점도 발견하지 못하고 아무 일도 되지 않는 그냥 막가는 국회?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입만 열면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거의 틀림없이 남들의 이익을 빙자하여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사람들이다』 지금 정치권의 여,야에 적용시켜도 뜨끔할 똥뱉지들 천지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라』고 한 케네디는 틀렸다.며 외친 자유주의 사상가 '밀턴 프리드만'이 생각남은 왜일까?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 노년, 장년, 청년 단순구분해서 논쟁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 청년들도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형제, 부모가 있고 그들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병찬 기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