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좌편향 교과서 아니면 무엇인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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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찬 작성일15-10-26 06:04 조회1,3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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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좌편향 교과서 아니면 무엇인가?<2>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폄하, 미화 및 왜곡>


6·25 남침 전쟁 왜곡: 미군의 결정적 도움 축소, 은폐(천재교육의 경우 미군이란 말을 한 마디도 쓰지 않고 유엔군으로 대체) 또는 왜곡(미군 파병에 의하여 국제전으로 비화된 것처럼), 북한군의 학살 행위 묵살, 남북한에 대한 兩非論(양비론)으로 김일성의 전쟁범죄 물타기.

대한민국 건설 세력 폄하: 좌파 정권을 제외한 모든 정부, 특히 이승만 박정희 정부와 국군과 경제발전과 대기업의 부정적인 면만 강조하고 민주화 운동, 노동 및 농민 운동을 일방적으로, 집중적으로 조명. 약점이 없으면 만들어냄 (박정희의 김대중 살해 명령, 국군의 월남 양민 학살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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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3세습정권 비호: 호감과 동정, 마지못해 하는 형식적인 비판. 특히 북한 인권 탄압 및 對南(대남)도발 및 테러 축소 은폐. 천재교육의 경우 천안함 폭침,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폭파, 삼척-울진 무장공비 침투, 의 강제수용소 언급 않아. 대신 새마을 운동, 중화학 공업 건설 등 대한민국의 성공사례엔 꼭 비판적인 서술 첨부.

좌파정권의 對北(대북)정책 미화: 북한 핵개발 지원, 불법송금, 對北 퍼주기, 左右(좌우) 이념 갈등 등 언급 없이 햇볕정책 칭찬 일변도.


<검인정 교과서에 대한 교육부 수정 권고 및 명령의 한계>


교육부(장관: 서남수)는 수정심의회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수정보완 권고한 829건 중 788건을 승인하였고, 41건은 수정명령을 통보

교육부 수정 권고 및 명령의 한계

- 대통령과 보수 세력의 압박에 마지못해 따라가는 식으로 수정 지시를 했으나 대 한민국적 사관과 관련한 본질적, 구조적 문제는 손을 대지 못함.

- 김대중에 대한 미화는 무시하고 이승만에 대한 정당한 기술을 과도한 것이라 지적 하는 등 좌경 기회주의적 수정 지시도 보임.

- 그러나 주체사상 선전, 의 토지 개혁 미화에 제동을 거는 등 몇 가지 중요한 점 에서 개선된 것은 교학사 교과서의 희생타 역할에 기인.

주체사상과 토지개혁 부분 수정 거부의 문제

- 천재교육 등이 교과부의 수정 권고에도 끝까지 자체 수정을 거부, 수정 명령을 받은 부분은 북한 선전물을 비판 없이 옮겨놓은 주체사상 설명과 토지개혁 미화.

- 이는 북한정권의 정통성과 관련된 핵심적인 대목이므로 한사코 저항한 것으로 추정됨.

- 의도적으로 북한 노동당 입장에서 주체사상을 교육하려고 한 행위로 의심하지 않 을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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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제재도 검토해야할 사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자유경제원이 지적한 좌편향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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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재교육(309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9473.1절 기념 시위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자, 제주도민은 이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관리들까지 가담한 총파업을 일으켰다. 미군정은 육지에서 경찰과 우익 청년 단체를 파견하여 이를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가혹한 탄압을 받아 미군정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 


2. 두산동아(270 


남한만의 총선거가 결정되자 이승만과 한국 민주당은 이에 찬성하였고, 김구와 김규식은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였다. 좌익은 단독 정부 수립 저지 투쟁을 전개하였다. 김구와 김규식은 북한의 김일성에게 통일 문제를 협의할 남북 협상을 제의하였다. 이에 대해 북한은 남북 협상에 동의하면서 사회단체 대표자 회의를 제안하여 남북 협상이 이루어졌다. 


3. 비상교육(352 


좌절된 친일파 청산  


광복 직후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를 처벌하여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자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으나, 미 군정의 친일 관료 유지 정책으로 인해 즉각적인 친일파 청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헌 국회는 국민의 여망에 따라 반민족 행위 처벌법(1948)을 제정하고, 반민족 행위 특별조사 위원회(반민특위)를 설치하였다. 반민특위는 일제 강점기에 반민족 행위를 일삼았던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체포하였다. 그러나 반민족 행위자 처벌보다 반공을 더 중요하게 여긴 이승만 정부는 반민 특위 활동에 비협조적이었다. 반민 특위 소속 국회 의원들 중 일부가 공산당과 접촉했다는 구실로 구속되었고(국회 프락치 사건)(중략)반민 특위 활동 기간마저 축소되면서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4. 두산동아 검정본(276 


농지 개혁을 실시하다  


광복 당시 대다수 농민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땅을 소유하는 원칙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19463월 북한은 무상 몰수, 무상 분배 방식으로 토지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에 자극을 받은 농민들은 북한과 같은 토지 개혁을 요구하였다. 미군정도 더 이상 토지개혁 요구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마침내 1949년 제헌 국회는 경자유전을 원칙으로 하는 농지 개혁법을 공포하였다. 농지 개혁 방식은 북한과 달리 유상 매수, 유상 분배였다. 


5. 두산동아(273 


북한, 정부를 수립하다  


……북한은 남한에서 총선거가 실시되자 곧바로 정부 수립에 나섰다. 825일에는 남북 인구 비례에 따라 최고 인민 회의 대의원을 뽑는 선거를 실시하였다. 북한과 남한에서 선거로 뽑힌 대의원들은 19489월 최고 인민 회의를 열어 헌법을 만들고, 김일성을 수상으로 선출하였다. 99일에는 내각을 구성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를 승인하였다 


남한에서의 최고 인민 회의 대의원 선거 남한에서는 공개적으로 선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밀리에 실시되었다.”  


6. 천재교육(312 


"남과 북에 수립된 양측 정부는 각기 자신이 권력을 장악한 지역을 토대로 나머지 지역을 통합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였다38도선 일대에서도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소련은 중국과 함께 북한의 군사력 강화를 적극 지원하고, 남침 계획에도 동의하였다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쟁은 국제전으로 확대되었으며" 


7. 미래엔(321 


전후 북한의 경제복구는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원조 아래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농지는 협동조합 소유로 전환되고 모든 농민은 조합원이 되었으며, 소규모 개인 상공업도 생산 협동조합으로 바뀌었다. 이로써 북한은 사유 재산 제도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확립하게 되었다”  


정부는 미국의 원조 농산물을 민간 기업에 불하하여 확보한 대충 자금으로 재정의 38%를 충당하였다. ···(중략)··· 필요 이상으로 들어온 미국의 농산물은 우리의 농촌 경제에 위협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보리와 밀, 면화 등이 가격 경쟁에 밀려 우리 농촌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8. 금성출판사 검정본(407 


한편 북한은 1950년대 후반부처 중국과 소련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주 노선을 표방하였다. 당시 진행되던 중·소 분쟁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등거리 외교로 대응하였으며 제3 세계를 향한 외교활동도 확대하였다 


이와같이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가 확립되고 자주 노선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주체사상이 등장하였다. 주체사상은 김일성 항일 유격대 활동을 혁명 전통으로 삼은 김일성 중심의 유일사상 체계였으며 결국 김일성 개인 숭배로 이어졌다. 1972년 제정된 사회주의 헌법은 북한을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로 명명하고 주체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우리나라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사상이라고 규정하여 북한의 사회 이념으로 공식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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