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공개된 TPP협정, 득과 실 따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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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찬 작성일15-11-06 11:30 조회1,424회 댓글0건본문
“5일 공개된 TPP협정, 득과 실 따져야”
5일 공개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타결 당시 예상됐던 대로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나라의 시장개방 수준이 98~100%인데 TPP 역시 앞으로 30년간 95~100%의 시장개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양자 간 FTA를 통해 수출시장을 선점해 온 한국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세부 내역을 뜯어보면 당장 한국의 수출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한국이 일찍 FTA를 체결해 관세를 낮춰왔기 때문에 상당 기간 선점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이 FTA와 TPP를 통해 한국과 일본에 각각 제시한 공산품 시장 개방률은 100%로 동일하다. 다만 한국은 이미 한·미 FTA를 통해 관세를 단계적으로 낮춰왔다. 이에 따라 2017년 초 한국은 공산품의 95.8%를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 이와 달리 TPP가 2017년에 바로 발효된다고 해도 일본은 미국 공산품 시장 중 67.4%에 대해서만 관세 철폐 혜택을 볼 수 있다. 일본이 참여하는 TPP 발효 전까지 한국은 ‘시간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로서는 기왕에 맺은 한·중, 한·베트남 FTA를 서둘러 비준해 TPP가 발효되기 전까지 선점효과를 최대한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국제경제, 법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한·중, 한·베트남 FTA는 해마다 일정 비율씩 관세를 인하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올해 안에 두 FTA가 국회에서 비준돼 발효되면 즉시 관세를 내리고 해가 바뀌는 내년 1월에 또 한 차례 낮출 수 있어 한국제품의 가격경쟁력을 그만큼 높일 수 있다. 한 국제경제 전문가는 “한국은 이미 한·미 FTA를 비롯해 많은 국가와 FTA를 이행하고 있는 상태”라며 “시장 선점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TPP가 한·미 FTA와 차별화되는 건 투자와 규범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이다. 김학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은 “TPP는 21세기형 무역 규범을 제정한다는 목표 아래 일부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FTA는 24개 조항(챕터)으로 이뤄져 있지만 TPP는 30개 조항으로 더 많다. ▶기업인이 출입국할 때 투명성을 높이면서 절차를 원활하게 하고 ▶국영기업과 민간기업 간 차별을 해소하며 ▶중소기업이 TPP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나라마다 다른 무역·투자 규제가 조화를 이루도록 일반 원칙을 정하고 ▶TPP 참여국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고 사업을 활성화한다는 항목도 담겨 있다.
환경 부문이나 위생 검역, 지적재산권 부문은 한·미 FTA보다 강화됐다. TPP 참여국 가운데는 선진국도 있고 개발도상국도 있다. TPP는 12개 나라의 서로 다른 무역 규범을 절충한 하나의 경제권처럼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도록 묶는 역할을 해낸다. 다자간의 ‘메가 FTA’란 점에서 한국 정부는 TPP 참가 의사를 굳힌 상태다. 관건은 참가 시점과 조건이다. 산업부는 협정문이 공개되면 내용을 분석한 다음 TPP 참가에 필요한 협의 절차를 밟아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작업반(워킹그룹)을 만들어 가입 조건을 기존 참가국과 협의해 확정하면 TPP위원회에서 가입을 승인하는 수순이 남아 있다. 짧은 시간에 가능한 일은 아니다. TPP 협상은 시작부터 타결까지 7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12개 참여국 의회에서 각각 비준을 밟는 절차가 남아 있어 발효 시기는 2017년 이후로 전망된다.
우리나라가 TPP에 참여할 수 있는 시점도 그 이후다. 다만 TPP 참여의 득실을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에 공개된 TPP 협정문을 보면 상품 부문을 비롯해 서비스·규제·국영기업·농산물 분야에서 한국이 쉽게 참여하기 어려운 조건이 산재하다. 문 차관은 “임의적인 시한을 설정하기보다 득실을 충분히 검토한 후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TPP 협정문은 확정된 내용은 아니다. 각국의 의회 비준 과정에서 이견이 있다면 세부 항목에서 조정이 있을 수 있다.
권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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