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상시 청문회법’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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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작성일16-05-21 07:52 조회978회 댓글0건본문
청와대, ‘상시 청문회법’ 고민 중
청와대는 20일 상시 청문회법(개정 국회법)을 ‘행정부 마비법’이라 비판하며 국회의 개정을 촉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도 한때 나왔지만, 청와대는 논의 끝에 “검토하는 방안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는 여소야대의 20대 국회에서 야당이 사사건건 청문회를 열어 정부 인사를 오라 가라 하는 것으로 국정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한 관계자는 “입법부의 힘이 너무 커지고 행정부는 청문회 공세에 휘말려 거의 마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특히 19일 19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어수선하게 진행된 틈을 타 정의화 국회의장과 여야 의원들이 법안을 통과시켰다며 불쾌해 하고 있다. 청와대 인사는 “사회적 논의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채 19대 국회가 20대 국회 운영의 룰을 졸속 결정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삼권 분립 침해 가능성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해 무력화시켰다. 상시 청문회법도 입법부와 행정부의 충돌이 논란의 골자인 만큼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청와대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우선 ‘국회의 권력 감시 기능 강화’라는 상시 청문회법의 취지를 부정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또 상시 청문회법을 거부하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여론이 민감해 하는 현안의 진상조사에 반대하는 것으로 야당이 몰아갈 여지가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해 6월 거부한 국회법 개정안과 이번 법안은 논란의 포인트가 다르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국회로 돌려 보낸 국회법 개정안의 경우,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본회의에 올리지 않는 방법으로 자동 폐기시켰다. 하지만 여소야대가 된 20대 국회에선 법안 거부권 행사가 청와대의 권력 누수를 부르는 위험한 카드가 될 수 있다. 국회로 돌아간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 본회의 출석ㆍ출석 의원 3분의2의 찬성’ 요건을 채우면 법안으로 확정된다. 더불어민주당ㆍ국민의당ㆍ정의당ㆍ무소속 의원에 새누리당 이탈파의 표를 합하면 3분의 2 찬성이 나올 수 있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이 ‘거부’ 당하면 청와대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지게 된다.
기존 국회법은 상임위가 청문회를 열 수 있는 조건을 '중요한 안건의 심사와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필요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었다. 개정 국회법은 여기에 '소관 현안 조사'를 개최 사유에 더했다. 상임위와 관련 있는 현안에 대해 폭넓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정된 국회법(일명 상시 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 상임위원회는 '소관 현안'이라고 판단하면 어떤 사안이라도 위원회 과반수 의결로 청문회를 열 수 있다. 현재 이 때문에 청와대는 '청문회 남발로 행정부가 마비될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법 개정으로 청문회가 좀 더 쉽고 폭넓은 주제에 대해 열리게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상임위원 과반수가 청문회를 열자고 마음먹으면 무슨 사안이든 청문회를 열 수 있는 것은 개정 전이나 이후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청와대와 야당이 맞서는 진짜 이유는 내용 때문이 아니라,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 개원을 앞두고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회법이 개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차피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부가 야당의 청문회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종전 국회법에서도 청문회는 국회선진화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과반수가 마음만 먹으면 청문회를 할 수 있었다. 20대 국회의 모든 상임위에서 두 야당은 과반을 차지할 수 있다. 당장 야권은 20일 "20대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어버이연합에 대한 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청문회를 하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국회법 개정에 대해선 찬반 의견이 있다. 국회 관계자는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통제를 확실히 할 수 있다"며 "또 이번 개정으로 청문회에 대한 쓸데없는 논란이 벌어질 여지가 줄었다"고 했다. 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청문회 대상 안건이 '개최 요건(중요한 안건의 심사)에 해당하느냐, 아니냐'를 두고 진통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으로 청문회를 열 때 '안건이 해당 상임위 소관인지, 아닌지'만 고려하면 된다.
하지만 증인·참고인이 의무적으로 출석해야 하는 등 법적 구속력이 있는 청문회가 남발된다면, 행정부나 기업체 등의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것은 사법권한을 넘은 입법권한 남용의 소지가 있다. 한 전문가는 "행정부 견제 범위를 절차적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국도 상·하원 상임위원회에서 상시 청문회가 열리지만, 청문회의 목적·범위를 명문화해 악용을 막고 있다. 우리도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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