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유서대필'---24년만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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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찬 작성일15-05-14 20:08 조회1,541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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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 김기설씨(당시 25세)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분신자살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한 강기훈(52)씨가 오랜 기다림 끝에 자신에게 씌워진 억울함을 완전히 벗었다. '유서대필 사건'이 발생한지 24년 만이고 3년 만기출소 이후 재심을 청구한 지 7년 만이다. 2007년 11월 진실화해위원회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재심을 권고했고 강씨는 이를 근거로 서울고법에 재심 개시를 청구해 2009년 9월 인용 결정을 받았다.
강기훈
검찰은 즉시 항고했고 대법원은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3년여 동안 미뤄오다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하고 2012년 10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12월 강씨의 재심 첫 공판이 서울고법에서 열렸고 지난해 2월 재심 재판부는 "1991년 국과수의 필적 감정 결과는 신빙성이 없어 그대로 믿기 힘들다"며 자살방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검찰은 곧바로 상고했고 1년3개월 만인 이날 최종 결론이 나왔다.
강기훈 운명 가른 유서 속 두 자음 'ㅎ'과 'ㅆ'
김씨가 분신자살로 사망하기 전 유서를 대필해 준 걸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 강씨는 재판과정에서 유서 대필사실이 없다고 줄곧 주장했지만 검찰과 법원의 판단은 '유죄'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살현장에 남아있던 유서의 필적이 강씨의 필적과 동일한지 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다. 재심 전 법원은 유서의 필적이 강씨의 필적과 같다는 내용이 담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인 김형영의 1991년 감정서의 신빙성을 근거로 강씨의 대필을 인정해 자살방조죄를 인정했다.
이날 법원은 원심과 같이 "김형영이 작성한 감정서는 신빙성이 없어 믿기 어렵다"며 "국과수가 내세운 특징 중 일부는 그 필적에 일관되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항상성(恒常性)이 없다"고 판단했다. 즉, 일반적인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특성이 나타나는 한글의 특성상 유서와 대조자료의 필적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일부 희소성이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특히 법원은 유서에 나타난 'ㅎ' 필체에서 첫 번째 획을 긋는 방향 차이에 주목했다. 유서 속엔 오른쪽 아래 방향과 왼쪽 아래 방향으로 그어진 두 종류가 합쳐져 나타나지만 강씨의 수첩 등을 통한 필적 대조 결과 모두 오른쪽 아래 방향이었다. 또 유서 속에는 'ㅆ' 자의 두 번째 획을 생략하는 특징이 나타나는데 강씨의 진술서, 화학노트 등에서 이같은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 점도 감정서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하는 이유가 됐다.
당시 국과수에 소속돼 있던 다른 감정인들이 필적감정에 참여한 적이 없음에도 공동심의한 것처럼 김형영이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 점도 고려됐다. 김형영은 1991년 필적감정 당시 김씨가 누나에게 선물한 책 속 메모,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 등에 나타난 필적이 유서의 필적은 다르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법원은 이 부분도 역시 김씨가 정자체만 사용하는 것으로 속단하고 필적감정의 일반원칙을 벗어나 빠르게 흘려 쓴 유서와 정자체인 김씨의 필적을 단순 비교한 것으로 판단했다.
강기훈 아닌 김기설, 유서작성 가능성 높아
법원은 김씨의 자살 전후 행적이나 유서의 내용과 형식 등을 종합했을 때 강씨가 아닌 김씨가 직접 유서를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재심 전 법원은 김씨의 자살 전 행동이나 유서 내용을 봤을 때 스스로 유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전민련이 김씨의 필적이라고 제시한 수첩이나 업무일지도 역시 조작됐다고 봤다. 하지만 이날 법원은 '유서대필' 수사가 시작되기 전 유서와 비슷한 메모를 봤다는 친구 임모씨의 진술, 김씨로부터 "유서 쓰러 간다"는 말을 들었다는 관련자 증언 등을 토대로 김씨가 직접 유서를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김씨의 수첩, 업무일지 등도 역시 강씨가 조작했다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며 유서 속 김씨의 필체와 유사하다고 결론냈다. 법원은 또 김씨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적힌 내용, 문장력, 표현력 등을 살펴봤을 때 유서 속 내용의 문장력, 표현력 등이 부족하지 않다고 봤다. 법원은 이 부분도 "분신자살을 하며 유서를 남기는 경우 자신이 유서를 쓰는 게 일반적"이라며 "김씨가 강씨의 문장력이나 표현력을 빌리고자 강씨에게 부탁해 유서를 받았다고 해도 그 내용을 다시 자신의 글씨로 쓰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원심과 같이 판단했다.
유서에는 부모에 대한 존칭이 전혀 없는 반면 강씨가 자신의 부모에게 보낸 봉함엽서에는 부모에 대한 존칭을 사용하고 마지막에 '소자, 올림'이라고 써 있는 점 등도 유서 작성자가 김씨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근거가 됐다. 당사자인 강씨는 이날 대법원 선고에 따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재 간암, 간경화 등으로 투병 중인 강씨는 선고 3~4일 전부터 주변과 연락을 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권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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