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 요즈음 ‘SNS 허언증’ 심각, '있어빌리티' 신조어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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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찬 작성일16-05-21 08:17 조회2,483회 댓글0건본문
우리사회, 요즈음 ‘SNS 허언증’ 심각, '있어빌리티' 신조어도 등장
온라인 공간에서 재력·경험·직업 등을 거짓으로 꾸며내는 현상을 ‘SNS 허언(虛言)증’이라고 부른다. 허언증은 상습적으로 거짓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포장해 말하는 증상이다. 이런 허언증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에서 더욱 강력해진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SNS 허언증’을 팍팍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이 가상 세계로 도피하면서 생긴 결과라고 진단하고 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실 세계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못 견디고 계속 SNS 속 삶으로 도피하는, 일종의 ‘심리적 생존’ 추구”라고 설명했다. 어렵게 성취하기보다 손쉽게 ‘척’하는 쪽을 택한다는 얘기다. 다른 전문가도 “SNS에서 거짓말을 반복하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자존감이 낮고 관심에 목말라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호주에선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에서 100만 이상의 팔로어를 끌었던 ‘SNS 스타’ 에세나 오닐(당시 19세)이 “나의 SNS는 허상”이라고 고백해 파문을 일으켰다. 12세부터 SNS를 시작한 그는 “내 몸매와 나의 인생이 얼마나 멋진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며 한 업체가 제공하는 옷을 입고 그 대가로 수십만원을 받은 사실도 털어놓았다. 이런 ‘과대 포장’이 심해지면 ‘SNS 허언증’에 빠지기 쉽고, 더 나아가 아예 다른 사람을 사칭하는 현상으로까지 진행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최근 유재석·아이유 등 유명 연예인을 사칭한 SNS 계정이 문제가 된 바 있다.
‘SNS 허언증’이 심각해 병원을 찾는 환자도 늘고 있다. 전문가는 “SNS에 계속 거짓된 내용을 올려 거짓말쟁이가 됐다는 자책감에 상담을 받는 내원 환자가 5년 전에 비해 3배가량 많다”며 “이들 중 상당수는 우울증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이 지배하는 SNS에선 곧잘 재력·경험·직업 등을 거짓으로 꾸며 '있어 보이는 나'를 추구한다. ‘척’하기 위해 주로 활용하는 수단은 외제차와 명품 가방·옷 등이다. 백화점에서 고가의 물품을 구입한 뒤 사진만 찍어 SNS에 올리고는 반품하는 방식도 많이 쓴다. 물론 SNS에 올리는 구매 후기에서 반품했다는 말은 당연히 ‘편집’된다. 사진 연출에도 적극적이다.
해외여행도 ‘인증샷’을 SNS에 도배하기 위해 간다. 일부는 전문 사진사를 고용해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는 느낌’의 스냅사진을 찍기도 한다. 파리·로마 같은 유명 여행지에는 스냅사진 전문작가들이 활동하고 있어 ‘반나절 촬영 20여 장에 30만원’ 등 시세가 형성돼 있다. 이러다 보니 SNS 이용자들도 ‘게시된 모습’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시장 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해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은 ‘사람들이 SNS에선 행복한 모습만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남성(53.1%)보다 여성(69.3%)에게서 이런 생각이 강했다. SNS에서 보여지는 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일 것이라는 의견은 6.4%뿐이었다.
이 때문에 최근엔 능력·재력을 우회적으로 과시하는 ‘허세샷’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차가 막힌다’는 글과 함께 외제차 핸들이 조금 보이는 사진을 올리거나 ‘카페 디저트가 맛이 없다’며 불평하는 사진 한쪽에서 명품 가방을 살짝 보여주는 식이다. 아예 ‘있어빌리티(있다+ability)’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행복 경연장’이 된 SNS에서 ‘허세’가 현대인이 갖춰야 할 하나의 능력이라는 의미다. 『트렌드 코리아 2016』(김난도 지음, 미래의 창)에선 ‘있어빌리티’를 설명하면서 “포장력이자 연출력이 되고 자신을 브랜딩하는 하나의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허세샷'은 SNS 속으로 도피하려는 욕구의 표현이다. 이런 ‘허세샷’을 풍자한 작품 사진도 등장했다. 태국의 사진작가 촘푸 바리톤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밖에 숨겨진 진실’이란 주제로 올린 시리즈다. 사진 속엔 고급스러워 보이는 음식이 예쁘게 자리 잡고 있지만 프레임을 키우면 먹다 만 인스턴트 음식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다. 멋스러운 애플 맥북이 사실 폭탄 맞은 것처럼 지저분한 방 침대 위에 놓여 있다. 거꾸로 선 요가 동작은 친구가 잡아준 덕이다. 프레임 밖의 진실이 ‘남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상’의 범주 안에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타인의 시선이나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전문가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자신의 가치나 정체성을 타인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며 “SNS의 원래 목적이 ‘소통’이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관심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와 내 주변에 돌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실제 생활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때 SNS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SNS를 통해 타인의 행복을 자주 접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하지만 점점 각박해진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면서 억눌린 욕망을 유머와 거짓말로 희석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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