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을 하려면 하의가 탈의돼야" 성폭행 미수범 영장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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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복 작성일15-02-24 12:36 조회1,627회 댓글0건본문
지난 6일 오전 2시 50분경 경기 지역의 한 식당에 윗옷이 벗겨진 채 속옷만 입은 A 씨(20·여)가 "살려 달라"고 외치며 맨발로 뛰어 들었다. 속옷 끈 한쪽은 팔까지 내려와 있었고, 양쪽 무릎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온몸에는 크고 작은 생채기가 가득했다. 식당 주인은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A 씨는 전날 저녁 초등학교 동창(20), 동창의 직장 상사 김모 씨(37)와 함께 술을 마셨다. A 씨는 이날 김 씨를 처음 만났다. 밤 12시를 넘겨 술자리가 이어지면서 모두 만취 상태가 됐다. 술자리가 파하고 A 씨는 집으로 가려고 식당을 나섰다. 하지만 오전 2시 17분 식당 앞 폐쇄회로(CC)TV에 찍힌 영상에는 김 씨가 길거리에서 A 씨를 뒤에서 껴안으며 배와 가슴을 주무르고, A 씨가 이를 뿌리치고 도망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A 씨는 경찰에서 "김 씨가 성폭행을 시도하면서 옷을 벗기고 온몸을 때렸다"고 주장했다.
도망친 A 씨는 번화가를 벗어나 실개천 근처까지 달렸다. A 씨는 "쫓아온 김 씨가 나를 붙잡아 강둑의 흙바닥에 눕히고 팔꿈치로 목을 누른 채 '가만히 좀 있어'라며 온몸을 주먹으로 때렸다"고 진술했다. A 씨는 상대방이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타 티셔츠를 벗기고, 가슴을 만지는 상황에서 몸을 비틀어 간신히 도망쳤다고 했다. 김 씨는 사건 다음 날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경찰에서 "나는 성폭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여자가 자꾸 도망가서 바닥에 눕혔을 뿐"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김 씨가 성폭행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A 씨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보고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김 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영장 담당 판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강간을 위한 상해인지 본인이 돌아다니다가 넘어져서 다친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며 "강간을 하려면 하의가 탈의돼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또 "강간을 위해 옷을 벗겼는지 피해자가 취해 더워서 벗은 건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피의자의 방어권도 보호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는 "2차 피해가 우려되고 죄질이 나쁜 강간치상 사건에서 영장이 기각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해당 판사는 지난해 12월에도 성폭행 피의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적이 있다. 술에 취한 피해 여성이 차량 안에서 성폭행을 당하기 전 "이러지 말고 차라리 우리 가게에 가자"고 성폭행범을 달랜 것을 두고 이 판사는 "남자 입장에서는 착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재신청했고, 같은 법원의 다른 판사는 영장을 발부했다.
사건 이후 A 씨는 한쪽 다리 신경이 마비됐고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A 씨의 어머니는 "딸을 병원에서 데리고 오는데 가해자가 풀려났다니 보복할까 두려워 병원도 안 가고 집 안에만 있으려 한다"고 말했다. A 씨 가족은 청와대와 대법원에 김 씨를 구속해 달라고 청원했다. 이명숙 여성변호사회 회장은 "이번 영장 기각은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법원이 성폭력을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류재복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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