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청구를 사기로 몬 황당한 보험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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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복 작성일15-03-04 17:29 조회2,3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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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 청구했더니 경찰에 수사의뢰"

1년 반 전 심모 씨는 딸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다 미끄러지면서 허리를 크게 다쳤다. 수술을 받고 미리 가입해 둔 보험사 3곳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사 두 곳은 곧바로 보험금을 지급했지만, 후유장해 보험금 4천여 만 원을 청구한 또 다른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는 대신 경찰에 사기미수 혐의로 수사의뢰했다. 1년에 걸친 경찰 조사 끝에, 결국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보험사는 다시 법원에 소송을 냈다. 심 씨는 "보험사에서는 뚜렷하게 못준다 준다 이런 얘긴 명확하게 하지 않고, 계속 시간을 끌면서 피의자로 몰아 신고를 했다"며 "보험사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억울하면 소송을 통해 진행하라"는 말이었다고 하소연했다.

9년 전 교통사고로 허리 수술을 받은 뒤 우울증으로 정신장해 2급에 해당하는 판정을 받은 주부 오모 씨. 4억여 원의 보험금을 청구하자 보험사는 경찰에 수사의뢰하고 직원을 시켜서 미행까지 했다. 경찰 조사 결과, 무혐의 결정이 내려지자 보험사는 이번에는 검찰에 2차례나 더 고소를 했다. 검찰 조사 결과 역시 무혐의로 결론났지만, 오 씨는 지금도 보험금을 주지 않으려는 보험사와 소송을 하고 있다. 오 씨는 "보험금만 청구하면 (보험사에서) 보험사기라며 고소를 했다" 면서 "최대한 줄수 있는 게 2천만 원" 이라며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 보험사 소송 76% 급증
불의의 사고를 당해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보험금을 주기는 커녕 경찰에 보험사기라며 수사의뢰를 하거나 법정에서 만나자며 소송을 걸어온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런데 이런 피해를 당한 보험 가입자가 한, 둘이 아니다. 지난해 손해보험사들이 분쟁조정 중에 소송을 제기한 건수를 보면 한 해 전보다 76%나 급증했다. 동부화재가 187건으로 가장 많았고, 현대해상(153건)과 메리츠화재(115건), LIG손보(94건), 삼성화재(76건), 한화손보(76건)가 뒤를 이었다. 특히 메리츠의 경우 한 해 전보다 소송건수가 9배 가까이 늘었다.

◆보험사들, 왜 소송 남발하나?... "보험금 깎고, 민원 줄이고"
보험사들이 왜 이렇게 수사의뢰와 소송을 남발하는 걸까. 취재진은 보험사의 전직 소송 담당 직원들을 만나봤다. A보험사에서 소송을 담당했던 前 직원은 "소송작업하는 것 자체가 어차피 업무의 하나이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고객에게는 엄청나게 크게 와닿는다. 그걸 미리 얘기해서 조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소송을 넣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소송을 걸면 가입자들이 복잡한 소송 절차와 비용이 걱정돼 보험금을 일부만 받고 포기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B보험사에서 소송을 담당했던 前 직원은 "소송을 제기하면 보험사가 주도권을 잡고 있기 때문에 70-80% 정도 보험사 쪽에 유리하게 결정이 되고, 보험사가 의도한대로 된다"고 말했다.

민원 건수를 줄이기 위해 보험사들이 수사의뢰나 소송을 악용해 왔다고도 했다. 민원 건수가 많은 보험사는 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게 되고, 테마검사의 대상이 되는 등 감독당국의 규제를 많이 받게 된다. 그러나 민원이 제기되기 전에 수사의뢰나 소송을 하면 가입자는 민원 접수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소송을 통해 민원 건수를 줄이려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보험사들은 직원들의 민원 건수를 급여와 승진에 반영하고 있다.

C보험사 前 소송담당 직원은 "팀원이 민원을 받으면 본인 점수는 물론, 팀 실적에서 점수가 깎이고, 누적이 되면 결국 진급에서 누락되고 급여가 깎인다"고 증언했다. 이렇다보니 보험사 직원들은 민원 건수를 줄이기 위해 소송을 많이 할 수 밖에 없고, 보험금을 제대로 못받는 선의의 피해자도 많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보험 선진국은? "옴부즈맨 도입해 소송 남발 막는다"
그럼 보험 선진국들은 어떨까? 보험만족도 세계 최상위권인 독일은 금융감독당국과 별개로 금융분쟁조정 '옴부즈맨' 제도를 두고 있다. 구성원은 전직 대법관 등 법조인들이다. 도입 첫해인 2005년 소비자가 제기한 5천 건의 분쟁 중 단 한 건만이 소송으로 갔을 만큼 공신력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또, 보험사는 분쟁금액의 1만 유로까지는 옴부즈맨의 결정에 반드시 따라야하고, 1만 유로가 넘더라도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역시 보험 선진국인 호주는 가입자가 금융분쟁을 신청한 뒤에는 금융회사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금감원이 분쟁 조정을 하고 있어도 소송을 제기하면 조정 절차가 중단된다. 금융회사가 소비자에게 과도한 소송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은 발의된지 2년이 지났지만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소송을 당하면 보험 가입자는 생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는다. 하지만 보험사는 소송이 일상화 돼 있고, 지더라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보험사들의 악의적인 소송 남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제도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독립적인 분쟁조정 기구를 마련하거나, 악의적인 소송을 제기한 뒤 패소한 보험사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등 소송남발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시급히 마련돼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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