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장애인 없는 '장애인 공장'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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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재복 작성일 15-02-01 08:42본문
[류재복 대기자]
공공기관에 가면 각종 비품에 '장애인 생산품'이라는 표시가 돼 있는 걸 볼 수 있다. 장애인들을 고용한 회사가 만든 물건들이란 뜻이다. 장애인들의 자립과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만든 제도이지요. 그런데 일부 업체들이 장애인 생산품 제도를 악용해 실제론 장애인을 고용하지도 않고 물건을 납품한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급기야 경찰도 수사에 착수했다.
정부 부처의 사무실이다. 비품 곳곳에 '중증 장애인 생산품'이란 표시가 붙어 있다. "공개입찰로 주문하는 것은 아니고, 중증장애인생산품을 우선적으로 구매를 하고 있다" 장애인 생산품을 납품하려면 보건복지부 인증을 받아야 한다. 전체 직원의 70%가 장애인이어야 하는데, 이 가운데서도 60% 이상은 중증장애인을 채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 업체에서 장애인은 과연 얼마나 일을 하고 있을까. 한 장애인 단체가 운영하는 경기도 동남부의 CCTV 제조 공장을 찾았다. 단체 측은 전체 직원이 30명이고, 장애인은 20명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오후 3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장애인은 한 명도 없다. 이유를 묻자 직원들마다 대답이 다 다르다. "매일 나오는데 오늘은 일이 있어서 못 나왔어요" "금방 나갔는데. 원래 여기서 앉아서 일해요"
장애인 20여 명이 일한다는 장소는 10㎡ 남짓한 회의실이다. 테이블 하나에 의자는 6개뿐이다. 공장 관계자는 "그럼 여기에 장애인 20명이 일을 한다고요?"라고 묻자 그는 "그렇죠. (사실상 말이 안 되잖아요.) 아니죠. 다 분산돼서 일하니까. 통제 안 되는 사람들은 그냥 돌아다녀요."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곳은 2년 전까지 장애인 단체 측과 D산업기술이란 회사가 함께 사용해왔다. 해당 장애인 단체의 이름으로 D산업기술이 정부 수의 계약을 따왔다는 의혹까지 나온다. 전 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일반 사업장은 할 수 없어요. 장애인 단체만 하도록 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명의를 빌려서 중증장애인 생산시설로 등록하고 국가에 납품한 것"이라고 말했다.
급기야 경찰도 이 업체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장애인 단체 이름을 내걸고, 정부 계약을 불법으로 따낸 혐의다. 경찰에 따르면 해당 공장이 정부에서 수주한 금액의 5~10%가 장애인 협회로 이동한 정황이 포착됐다. 현행법상 중증 장애인 생산시설은 온전히 자력으로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박모 씨(D산업기술 대표)는 "정부 납품 사업을 하다가 잘 안 되긴 안 됐어요. 지금은 (공장을) 임대해 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해당 장애인 단체는 이런 공장을 2개 더 갖고 있다. 지난해 이 단체가 올린 매출액은 모두 140억 원에 이른다. 웬만한 중소기업 수준이다. 공장 인근 부동산에서는 "물량을 많이 수주해서 단기 임차 공장을 얻은 적이 있어요. (외지에? 여기 말고 또?) 네. 여기 공간이 모자라서...."라고 설명했다. 장애인단체 이름을 내걸고 정부 계약을 불법으로 따낸 혐의다.
경찰은 다른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다. 정부가 지급하는 장애인 고용 장려금을 가짜로 청구해 빼돌린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장애인 근로자 한 명당 매달 30만~50만 원의 장려금이 지급된다. 취재진은 업체가 제시한 근로자들의 주소를 확인해 봤다. 20명 중 13명의 주소가 경기도 부천에 몰려 있었다. 공장과 60km 이상 떨어져 있어 장애인 입장에선 사실상 통근이 힘든 거리다.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장애인 근로자 가운데 13명이나 부천에서 온다"고 말했다. 경찰도 이 부분을 주목하고 있다. 위치 추적 등을 통해 장애인으로 이름을 올린 직원 상당수가 실제 통근을 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정부는 해마다 고용 장려금으로 1400억 원을 쓰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서류만 간단하게 검토하고 돈을 내준다.
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제출한 서류를 기본으로 조사를 하고요, 모든 사업체에 현지 실사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줄줄 새는 장애인 지원금이 과연 이 단체만의 문제일까. 일반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해 혜택을 받으려면 지방자치단체 점검을 받아야 한다. 장애인이 10명 이상이면 사회복지사도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는 이런 의무에서 자유롭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복지단체는 사실 그런 기준이 없다. 오히려 이쪽(단체들)이 그런 부분은 좀 취약한 편"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은 다른 장애인 협회가 운영하는 기계 공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역시 장애인은 보이지 않고, 일반인만 일을 하고 있다.
A장애인협회 공장 관계자는 "(여기 A협회 찾아왔는데요) 아니에요. 여기 현판 있잖아요. 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다른 장애인 협회의 가구 공장도 마찬가지다. B장애인협회 공장도 "저희는 임대로 해서 빌려 쓰는 거예요. (임대 계약서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것까지 보여달라고 하는 건 좀…" 이창원 교수(한성대 행정학과)는 "협회나 조합은 그게 권력이 된다. 권력자들은 실제 장애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을 위한 기회주의적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장애인 없는 장애인 고용 시설이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도 수백억 원씩 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