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25시

성완종이 고향 주민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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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5-04-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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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근 이기권 씨, 14일 서신 전문 공개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2013년 4월 충남 부여·청양 재선거 당시 이완구 총리에게 3000만 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사실이 14일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세간의 관심 대상이던 성 전 회장의 죽기 전 서산·태안 지역민들에게 쓴 마지막 편지가 공개됐다. 내용을 유추해 볼 때 죽음을 결심하기 전 8일~9일 새벽 사이에 쓴 것으로 보이는 이 편지는 A4 용지 3장 분량으로, 고향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지역민들의 성원에 대한 감사와 함께 최근 이어진 검찰 수사에 대한 억울함, 사무친 한을 구구절절이 써내려갔다.

성 전 회장의 측근인 이기권 전 새누리당 충남도당 대변인은 이날 오전 “고(故) 성완종 회장님께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지역주민들에게 보내시려고 했던 서신 전문을 보내드린다”며 이메일을 통해 굿모닝충청에 전달해 왔다. 그는 이어 “결국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되어 버렸다는 안타까움에 언론을 통해서 공개한다”며 “본질이 왜곡되지 않게 가급적이면 전문을 보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성 전 회장은 이 편지 서두에 “촉촉한 눈가의 이슬이 안경렌즈에 떨어지지만 닦으며 닦으며 그동안 부족한 저에게 주셨던 따뜻한 마음과 사랑에 감사의 글을 올리고 검찰에 출석하려 한다”고 말해 당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할 의지가 있었음을 암시했다. 하지만 이후의 내용을 보면 편지를 쓰는 사이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심하게 흔들리는 듯 격정적인 어조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실제로 그는 이어진 글에서 “기업과 정치활동을 하면서 더 넓게 보듬고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외롭고 힘들어 하는 많은 분들을 더 섬겨야 했음에도 그리하지 못했음을 널리 용서하여 주시기 바란다”며 “행여 저의 부족한 언행으로 조그마한 마음의 아픔이라도 있으셨다면 내려놓으시고 저의 사과를 받아 주셨으면 한다”고 마지막 당부인사와 같은 말을 남겼다.

반면 편지 중간에는 “저는 이제 정치적인 파고의 소용돌이 중심에 서있다. 그러나 저는 정치적으로 원한을 살 일을 하지 않았다. 기업인으로써도 결코 상식에 벗어나거나 도덕적으로 손가락질 받을 일은 하지 않았음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며 억울한 심정을 항변하며 적극적인 소명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편지를 마무리하는 말미에는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과 격려를 뒤로하고 이 정치적 탄압 속에 영어의 몸이 되어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할지도 모르겠다”며 “지나온 세월의 길에서 사랑하는 서산태안의 여러분 모두는 형님이셨고 동생이었으며 함께 거닐어 준 친구였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며 다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중에도 성 전 회장은 “사법당국은 저를 세금 떼먹은 파렴치범으로 주요방송과 신문에서 난도질 하도록 부추겼지만 자원개발관련 조사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저의 개인의 비리로 몰고 있다”며 “저는 결코 국민의 세금 단 1원도 사욕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자원개발 및 개인비리와 관련한 사법당국의 수사행태에 상당한 억울함을 토로했다.


성완종 전 회장이 주민들에게 보낸 편지 전문.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서산시민과 태안군민 여러분! 촉촉한 눈가의 이슬이 안경렌즈에 떨어지지만 닦으며 닦으며 그동안 부족한 저에게 주셨던 따뜻한 마음과 사랑에 감사의 글을 올리고 검찰에 출석하려 합니다. 기업과 정치활동을 하면서 더 넓게 보듬고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외롭고 힘들어 하는 많은 분들을 더 섬겨야 했음에도 그리하지 못했음을 널리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행여 저의 부족한 언행으로 조그마한 마음의 아픔이라도 있으셨다면 내려놓으시고 저의 사과를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내 고향 서산 태안은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포근히 감싸주고 위로해 주며 새로운 힘을 돋게 해 준 어머니의 태반이었고 성장 판 이었습니다.

집안이 망해 자식들을 돌볼 수 없었던 어머니는 세 명의 동생들을 잘 부탁한다며 엄마 돈 벌어올게 너만 믿는다며 먹이지 못해 부어오른 젖가슴 위로 눈물을 떨구며 추운 1월의 새벽공기를 가르고 삼길포 항으로 떠나셨습니다. 제 나이 11살 초등학교 4학년, 막내는 한 살짜리 돌박이 였습니다. 광야에 내몰린 저는 의지할 곳 없는 가장이었고 시련은 계속 되었습니다. 막내를 업어 해미에 있는 외갓집에 맡긴 후 어머니를 찾아 무작정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은 것이 저의 첫 번째 여정이었습니다.

누추한 옷에 깡마르고 새까맣게 탄 아들을 보자 완종이 아니냐며 정신을 잃으셨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처럼 남아있습니다. 저는 신문팔이 구두닦이 야학 등을 하며 돈을 벌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오늘 저를 있게 한 귀향이었습니다. 동생들이 기다리는 고향은 정말로 푸근했습니다. 힘든 시대의 십자가였지만 고귀하고 소중한 삶의 수채화였습니다. 저는 고향에서 지게도 져봤고 작은 장사에서부터 운수사업 그리고 오늘 저를 있게 한 조그만 건설업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과 격려가 큰 힘이었습니다. 오늘 경남기업을 통해 오대양 육대륙을 누비며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꽂게 한 것은 고향에서 배우고 익힌 대담한 도전과 응원의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가정환경이 힘들어 배움의 길에서 방황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다음세대에게 가난의 아픔을 덜어주려 노력했습니다. 저의 뜻을 함께 해주시고 헌신해 주신 재단가족 분들과 성원해주신 서산태안 선 후배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의정생활은 비록 2년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이었지만 제가 꿈꾸어 왔던 지역발전에 온몸을 던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으로 국회의원이 된 후 수십년 묵은 지역의 현안들을 해결하고 미래로 가는 창을 열 수 있는 초석을 놓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지역 여러분이 보내주신 격려와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정치적인 파고의 소용돌이 중심에 서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적으로 원한을 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업인으로써도 결코 상식에 벗어나거나 도덕적으로 손가락질 받을 일은 하지 않았음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법당국이 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자원개발을 통해 국민세금을 떼먹은 파렴치범으로 확정하여 언론에 실시간으로 제공, 부도덕한 사람으로 매도해 왔습니다. 자원개발은 실패 확률이 높아 많은 기업들이 기피하는 분야입니다. 정부가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성공조건으로 지원하는 정책입니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기 때문에 정부산하 공기업이 1대 주주가 되어 공기업 책임 하에 개발하는 구조입니다.

저희 회사는 통장 한번 보지 못했고 인력 한명 파견하지 못했습니다. 사법당국은 저를 세금 떼먹은 파렴치범으로 주요방송과 신문에서 난도질 하도록 부추겼지만 자원개발관련 조사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3월 22일 일요일 오후 “검찰고위 관계자의 말”이라는 전재로 ‘뉴시스’라는 통신사에게 자원개발자금이 정상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럴수는 없습니다. 근 한 달 여간 자원개발과 관련해 주요방송사와 언론을 통해 저와 저의 가족을 무참히 난도질을 했으면 자원개발과 관련해 횡령한 게 없다고 공식적인 발표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그러나 검찰은 궁지에 몰리자 저의 개인의 비리로 몰고 있습니다. 기업 활동을 하면서 기업에 피해를 끼치고 잘못을 저질렀다면 무한한 책임 질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을 떼먹은 사람으로 매도한 사법당국의 처사는 저를 사지로 내모는 것입니다. 저는 결코 국민의 세금 단1원도 사욕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서산시민과 태안군민 여러분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과 격려를 뒤로하고 이 정치적 탄압속에 영어의 몸이 되어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온 세월의 길에서 사랑하는 서산태안의 여러분 모두는 형님이셨고 동생이었으며 함께 거닐어 준 친구였습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서산장학재단 이사장   성완종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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