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하라","2선후퇴 필요 없다" 분노민심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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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편집국 작성일 16-11-13 03:50본문
"박근혜 퇴진하라","2선후퇴 필요 없다" 분노민심 폭발
최순실 일당 국정농단 사태들로 촉발된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 최대의 국민집회,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3차 주말 촛불집회가 12일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집회이고, 촛불집회로는 역대 최대 규모여서 국정농단 사태를 보는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나타냈다. 사상최대로 손꼽을 만큼 많은 인원이 모였음에도 집회는 대체로 평화적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다만 일부 참가자가 청와대 진입로인 내자동 로터리에서 청와대 방면 진출을 시도하며 경찰과 충돌하는 등 3일 새벽까지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1천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는 이날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문화제를 개최했다. 오후 7시30분 기준으로 주최 측은 100만명, 경찰은 26만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도심인 세종대로, 종로, 을지로, 소공로 등 주요 도로는 물론 인근 지하철역까지 한때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 집회는 2000년대 들어 최대 규모다. 2008년 6월10일 광우병 촛불집회(주최 측 추산 70만명, 경찰 추산 8만명),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규탄 촛불시위(주최 측 추산 20만명, 경찰 추산 13만명) 참가 인원을 넘어섰다.
시민들이 많이 몰렸을 때는 남북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숭례문까지, 동서로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종각까지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 규모에 맞먹는 역대 집회로는 100만명이 모인 것으로 알려진 1987년 6·10항쟁이 있다. 촛불집회가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고로 숨진 효순·미선양 추모집회에서 시작한 점을 고려하면 촛불집회로는 사상 최대다.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지하철 1∼4호선 시청·광화문 인근 9개 역 승하차 인원은 이날 오후 11시 기준으로 평소보다 60만7천명 많았다. 서울시민은 물론 수많은 인원이 지방에서 전세버스나 열차로 상경해 집회에 참가했다. 대학생, 청소년, 어린 자녀와 함께 나온 부모 등 면면도 다양했다.
정오부터 서울광장, 대학로, 탑골공원 등 도심 각 지역에서 노동계, 청소년, 청년·대학생 등 각계각층 시민들이 사전집회를 연 뒤 오후 4시 서울광장에 모여 민중총궐기 집회를 개최했다. 대구, 부산, 광주, 제주 등 지역에서도 주최 측 추산 6만여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모여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도심을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종로, 을지로, 의주로 등 서울 도심 곳곳을 거쳐 청와대 진입로인 내자동로터리까지 5개 경로로 행진했다. 경찰은 최소한의 교통 소통 확보를 이유로 내자동로터리를 낀 율곡로에서 남쪽으로 내려간 지점까지만 행진을 허용했다. 그러나 주최 측이 경찰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내자동로터리까지는 행진이 가능해졌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촛불을 들고 "박근혜는 퇴진하라", "2선 후퇴 필요 없다" 등 구호를 외치며 도심을 누볐다. 청와대를 그려 넣은 영정이 있는 상여를 메고 곡을 하며 행진하는 모습도 보였다.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청와대 남쪽 주요 도로가 시위대로 가득 차 마치 촛불 물결이 청와대를 아래부터 포위하는 듯한 풍경이 연출됐다. 문화제는 방송인 김제동·김미화, 가수 이승환·정태춘·조PD 등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발언, 공연 등으로 진행됐다. 이승환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들지 못해 창피하다. 요즘 정신적 폭행을 당한 느낌"이라며 자신의 대표곡 '덩크슛' 중 일부 노랫말을 '하야하라 박근혜'로 바꿔 시민들과 함께 열창했다. 박 대통령의 모교 서울 성심여고 재학생들도 무대에 올라 "'진실, 정의, 사랑'이라는 교훈을 선배님의 어느 행동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면서 "우리는 당신을 대한민국 대표로 삼으며 살아갈 자신이 없다"며 하야를 촉구했다.
이날 집회는 역대로 손꼽을 만큼 많은 인원이 모였음에도 대체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도심에 모인 대다수는 별다른 돌발행동 없이 집회에 참가했고, 법원이 허가한 경로를 지켜 행진했다. 다만 8천명가량이 행진 종착지인 내자동로터리에서 청와대 방면으로 북진을 시도하다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경찰과 대치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 간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계속됐고, 경찰관과 의무경찰, 시위대 여러 명이 호흡곤란이나 탈진 등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한 40대 남성은 경찰관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가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러나 과격행위가 있을 때마다 시위대 내부에서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극한 상황을 차단하려는 분위기도 강했다. 집회가 끝나고서 광장 곳곳에 쌓인 쓰레기나 바닥에 묻은 촛농을 스스로 치우는 모습도 보였다. 광화문 광장 주변에서는 일부 참가자들이 텐트농성을 하거나 소규모 단위로 모여 토론을 계속하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경찰도 앞서 두 차례 주말집회에서 보인 '인내 대응' 기조를 유지하며 집회권을 최대한 보장하려고 노력했다. 이날 집회 관리에 투입된 경찰 경비병력은 272개 중대 2만5천여명이었다. 허용된 지점을 넘어 청와대까지 진출하려는 일부 시위대와 장시간 대치가 이어졌음에도 검거나 해산 시도는 최대한 자제했다. 경찰이 '비폭력'을 외치며 시위대에 준법을 호소하고, 안전관리에 애쓰는 모습도 역력했다. 대체로 질서있게 집회가 이어지고 있으나 박대통령에 대해 분노한 민심은 이제 앞이 보이지 않고 있다.
추적사건25시 사회팀